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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잘 늙는 어른이 되자"
"아 언니, 내 꿈이 어른으로 늙어가기야"
"아~진짜?"
"나 어릴 적부터 멋진 어른으로 늙고 싶다고 생각했어~ "
술 한잔 함께하려고 가오리찜을 포장해서 검정 봉지에 담아 들고 골목길을 들어서며
용우언니랑 나는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에 새삼 신나고 재미있어했다.
아이를 낳는다고 다 부모가 되는 게 아니고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부모가 되었다' , ' 어른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이것은 '진짜'라는 것에 대한 고뇌에서 출발한다.
' 진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바람
한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살아온 얼굴에 책임지는 어른'으로 살고 싶단 이야기를 해왔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추인 내 얼굴을 보다 깜짝 놀랐다.
피곤함과 고단함이 잔뜩 양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눈가 주름이 많은 사람은 눈웃음을 많이 짓는 사람일 테고
미간에 주름이 많은 사람은 인상을 자주 구기는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늙어가는 나의 얼굴에 잡힌 주름이
내가 살아온 삶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자애롭고 여유 있는 얼굴로 늙고 싶다는 바람으로 한 말이었는데
내 얼굴은 이미 찌든 삶을 비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예전에 선배들은 하늘 같았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 선배들이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내가 존경하지 않더라..그런데 아직도 존경하는 몇몇 선배들이 있어~"
코를 톡 쏘는 가오 리살을 쭈~욱 찢어 콩나물에 감싸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용우언니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사람 허점을 알게 되었다고 그런 건 아니야.
어떤 선배는 그렇게 당당하고 멋졌던 분이었는데
가정폭력으로 아들 둘을 데리고 이혼 후 작은집으로 이사하는 데
선후배들이 가서 이삿짐을 나르고 도배를 도운 적이 있어.
무척 놀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 존경심이 줄어들지 않더라고,
그 선배는 아직도 자기 영역에서 자신의 일을 하며 멋지게 살아가고 있어"
그렇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역경을 겪지 않고 온실처럼 살아 구김살 없는 얼굴을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거울속에 비췬 내 어울한 얼굴을 보며 '이번 생은 틀린 것 같더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자 용우언니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말했다
"야! 앞으로 우리 창창해 지금부터라도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언니가 있어서 '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어른이란
주변 사람의 힘겨움을 외면하지 않고
고난에 유난 떨지 않으며
또 그것을 극복해내고
자신의 잘못을 입으로 시인하길 주저하지 않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뒤따라 오는이들에 게 방향을 제시하고
함께 고민해주고
막막해하는 이들의 넋두리를 말없이 고개 끄덕여주는..
다른 사람과 이웃과 동료와 친구와
함께 걸어주는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가오리찜을 사주며 나와 술을 마셔준
용우언니가 오늘 내게 또 한 명의 어른이 되어주었다.
내가 오늘 왜 힘겨웠는지 이 글만 보고 기억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나의 힘겨움을 외면하지 않고
술 한잔 할까? 물어준 언니가... 고마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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