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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2001년 1월 '소리'
창창 소리가 나는 홑창의 문틈새를 따라
찬기운이 스물스물 방공기를 채워가는밤
깊은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전에 기름보일러의 기름을 떨어트려
냉골에서 잠드는 고생을 하고서야.
자취하며 관리해야하는 것이
난방보일러도 포함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오빠와 자취하던 제작년,
언니와 자취하던 작년에는 몰랐던 일이었다.
처음 오빠와 살 때는 시골집에 가기 편한 터미널앞에 집을 구했었고.
언니와 살때는 언니 학교와 가까운 곳이라 내 학교는 40분 버스를 탔어야 했다.
언니가 유학을 떠나고 혼자 살 수 있다는 자유로움에
마냥 기분이 좋았고.
나도 내 학교 앞에서 자취하고 싶다고 떼를 써
학교 앞에 방을 구했다.
그러나 혼자 자취한다는 것이
자유만 주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며 여실하게 배우고있다.
입던 옷을 던져놓고 세탁기가 넘칠즈음
언니가 돌려주는 빨래.
언니가 개어주는 옷을 꺼내 입을 땐 몰랐던 편리함이었고
언니가 툴툴거리며 '방청소는 나혼자 한다'고 짜증을 낼 때 조차
나도 한다며 입을 삐죽거리며 말대꾸를 하곤 했던 이기심을 마주한다.
혼자 자취를 하며
언니의 그 투덜거림과 그 살림을 혼자 하냐는 성냄 속에는
"내 일 이라는 책임감이, 왜 너에겐 없고 내겐 있냐" 라는 뜻이란 걸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언니를 돕고 있었기에 해주면 언니가 고마워 해주고.
못해도 괜찮은 것이었다. 나는 내일이 아니라 돕는것일 뿐이었다.
언니는 그 무게가 힘겨웠던 것이란걸..
혼자 자취를 하며 깨달았다.
난 여전히 동생이었고 언니는 언니였음을
지금은 오로지 내 일이었다.
식탁을차리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설거지를 하고..
심지어 혼자 만화방을가고
목욕탕을 가고
혼자 머리를 하러 가야한다는 것 마저 낯설었다.
혼자 하는 자취는 자유를 느낄 새도없이
그런 깨달음과 외로움을 익혀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더 없이 힘겨운것 은 아무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잠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언니, 오빠와 함께 살 땐
언니나 오빠가 외박을 하거나,
늦게들어오는 날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 안도감이란 것이 없다는 것은
깊어지는 밤을 두렵게 했다.
깊이 잠들었다 생각했다.
그러나 자취방 마당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내 방문앞을 서성거리는데
눈이 왔는지 뽀도독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날카롭게 찢어놓고
가슴이 설렁해지며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좌로 우로 슬금슬금 뽀도독거리는 소리가 계속났다.
내가 잠에서 깼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이불을 양손으로 움켜 쥔 손등이 시린줄도 모른 채
온 신경을 귀로 모아 소리에 집중했다.
얼핏 눈을 들어
문고리에 자물쇠 걸이가 잘 감겨있는지 흘겨보았다.
그리고 빠르게 주변에 몽둥이가 될 만한것을 탐색했지만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한참 신경을 곧추 세우는 틈새 어딘가
소리가 멈추었다.
소리가 나지 않고서도 쉽사리 이불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밖을 확인해야 한다는
호기심인지 불안감인지 모를 충동이
나를 자꾸 나가보라 떠밀었다.
온통 귀를 예민하게 굴며
바람소리 창 흔들리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들 사이
발걸음소리가 어디있는지 귀를 한참을 더 귀울인 뒤에서야
이불을 내리고 몸을 일으켰다.
조심스레 열쇠고리를 내리고 문을 열였다.
소리나지않게 조심하며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찬바람이 콧등을 스쳤다.
바람이 차다는 사실보단
있을지도 모르는 낯선 누군가를 찾아 온 신경이 헤메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문을 열고 방문을 나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하얀 눈위에 내 방문앞으로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고양이발자국.
그리고 그것이 고양이 발자국이라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화장실 뒷켠에 웅크려있던
고양이의 파란 눈과 마주쳤고
순간 후다닥 담을 넘는 고양이를 보고서야
안도감인지 허탈함인지가 몰려왔다.
그리고 마루에 걸터앉아 어이없는 나를 스스로 다독였다
' 설마 눈위를 걷는 고양이 발자욱 소리를 듣고 그렇게 놀랬던 것인가'
눈으로 보고도 나는 나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후로 몇번...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었지만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언니는 말했다
"야 꿈꾸고 헷갈린거 아냐? 기억은 조작된다니까!"
잠귀가 예민하다는걸 나는 비로소 그 밤에 스스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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