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주머니 07. 앵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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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주머니

생각주머니 07. 앵두

by jejetiti 202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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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고 탐스럽게 익은 앵두

 

타닥 타닥 타다닥 채르르르 타탁


대나무장대 하나가 앵두 나무 가지사이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회색 콘크리트 블록에 시멘트를 바른 성인 어깨
높이의 담장너머로 뻗은 앵두나무가 골목쪽으로
건너와 빨간앵두를 영롱하게 빛내며 탐스럽게
열렸다.

빨래줄에 묶어 둔 장대를 떼어다 이리저리
휘두르며 앵두서리를 해 볼 요량인가 보다.

자신의 키보다 넉자나 더 큰 장대는 마음대로
휘지도 않고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오른쪽으로
휘청 왼쪽으로 휘이청 거리며 흐느적 거릴 뿐
도무지 앵두를 떨어트리 못한다.

"인철아!
기짝이아니라 이짝으로~~오~~
더~~이~짝으로 바~아짝 뗑겨보라 잉?"

"아! 쫌만 기두리라 니는 심도 안쓰멘서
나한티만 이래라 저래라하구루 !! "

무거운 장대를 휘두르느라 썽이 잔뜩 난 은철이는
볼에 바람을 집어넣고 볼멘소리를 했다.

"야~ 야! 내리와라 아자씨오신다. 싸게싸게 내리온나!

망을 보던 대진이 말에 둘은 후다닥 장대를 내리고
은철이와 진석이는 누가 뭐라 할새도 없이
마치 합이라도 맞춰 본 듯이
장대를 앞뒤로 나누어들고 냅다 줄행랑이다.

"쯧쯧쯧쯧 이놈의 썩을노무 시끼들
죄다 이파리를 조사놨네,
아 진짜 가지를 쳐버리든지 해야지~ 원"

골목어귀에 접어들어 자신의 집 담장아래를
바라보던 한진아비는 담장너머 탐스레 열린
앵두열매와 담장 밑에 떨어진 잔가지들 사이로
짓이기 듯 뜯겨 나간 나뭇잎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고선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오월이면 한진이네 집 마당 우물가에 심겨진
앵두나무는 아주 탐스럽게 앵두가 열린다.
사방으로 뻗친 나뭇가지가 굵고 무성해 한진이는
곧 잘 나무를 타고 올라가 앵두를 따곤했다.

초봄에는 꽃향이 달큰하고
오월이면 열매향이 달큰하게 번져
그 집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꼭 한번
나뭇가지를 올려다 보게 된다.

동네 하나 뿐인 앵두나무는 모든 동네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는
아니어도 5월만되면 황금개구리 열돈을
아랫목에 묻어놨데도 아쉽지 않을 부러움이
담장 밖에 걸리기 때문이다.

" 이노무시끼는 또 어디로 내삔겨?
앵두나무 좀 잘 지키랬더니.."

집에 인기척이 없자 한진아비는 괜시리 성이난다.

앵두가 다 익어 맛있게 열리면 한소쿠리 따서
이가 부실해서 잡수시는게 영 신통치 않으신 채

집안에만 계시는 치매걸린 노모에게도 조석으로
입가심하시라 내어드리고

많이 익어 말캉해진 알맹이는 물에 담궈 얼려
놓았다가 여름에 수박 화채할 때도 넣어먹고

매번 농사기구를 빌려쓰는 앞집,
치매걸린 노모를 간간히 챙겨주는 뒷집도
나누어 주려고 생각하건만,
아이들의 서리질에 제 때 수확을 해본 적이 없어
성이 나는 걸 모를 일도 아니다.

여기저기 익는 속도가 달라도 한 스무날은 꾸준히
열매가 익어갈텐데, 서리질에 가지는 부러지고
내년에 꽃이 펴야 할 새 나뭇가지를 잃는 것도
번번히 속이 뒤집힐 일이다.

그렇다고 5월엔 앵두나무만 지켜보고
서 있을수도 없다.

쌀 열댓가마니 나오는 다섯마지기 작은 논이지만
모를 심어 놓은지 얼마 안된터라
물길도 자주 들여다 봐야하고 수로도 다져놓고,
제초도하고 할 일이 태산이다.

밭은 또 어떠한가

서리가 멈추고
농사지을 비가 내린다는 곡우가 지난지 한참 지난 땅을
갈아엎고 가마니를 덮어 거름을 삭혀 둔 땅에
새로운 작물을 심어야하는 시기이다.
그새 웃자란 풀들을 갈아 엎고 고구마랑 고추를
더 늦기 전에 심어야 지난 여름처럼
태풍에 고추가 썩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속도 모르고 '앵두없는 사람 서럽다' '생색낸다'
이웃의 수근거림을 대할 때면
'그냥 콱! 담장너머까지 자라는 앵두 가지를
싹 다 잘라버릴까' 싶은 심정이다.

그때,
골목어귀를 돌아 들어어서는 아낙네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메메 한진이네 앵두가 익었구먼
벌써 봄이 온게 실감나는 구먼~"

"아따 요거시 탐스럽게도 열맀네~잉~"

"또 을매나 난리구설을 칠랑가 모르겄네"

"우짜 그란~데~에?"

"몰라 그릉가~ 동네 아그들이 요것이 을매나
먹고 잡겄어~ 허구헌날 서리를 해제끼니...."

"아 근디~ 담빼라크로 삐지 나온거슨
지나뎅김 오다~가다~ 따 잡수소~ 허고
앵두가 지짝으로 말하는 거 아닌가벼 ?
안그라요~?"

말하는 것과 동시에 길순네가 손을 뻗어
앵두를 하나 낼름 따서 입에 넣었다.

'워메~ 애들도 안하는 짓을..
또 한진네 보면 썽 낼라꼬~"

옆에서 엄두도 못내고 있던 정선네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발꿈치를 들어올려 담장 안을
살피다 담장을 노려보고있는 한진아비와 눈이
딱 마주쳤다.

'흐메~'

흠짓!

정선네는 길순네 팔뚝을 톡톡치며 옆구리로
길순네를 밀치고는 앞으로 비스듬히 비켜나며
고개를 숙였다.

"큼 흠흠~"

고개를 숙인 채 길순네에게 눈짓으로 안에
누가 있다는 눈짓을 해보였지만 눈치없는 길순네는

"아 성님 와그라요~ 성님도 하나 자실라우?
고놈 참 달큰하당께요~"

길순네는 또 손을 뻗어 이번에는 주렁주렁
네개가 한데 달린 앵두 송이를 휙 잡아챘다.

그때

성난 들소 한마리가 돌진하듯 뛰쳐나온 한진아비가
대문을 벌컥 열며 소리를 질렀다.

"이 썩을노무 담삐락을 뿌셔 뿔던지,
앵두나무를 뽑아 뿔든지, 허구헌날 이놈 저놈
다 쳐먹어대니 썽한 앵두꼴을 못보는 구먼~으잉?"

막 앵두송이를 따 낸 길순네는 눈이 땡그레지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고는 손바닥 위의 앵두를
버리지도, 입에 넣지도 못하고 휘휘 저으며

"하따~ 앵두 두번만 쓰렸딴 담빼락이랑
내 목이 같이 떨어지.."

정선네는 길순네 입을 급히 틀어막으며
길순네를 담벼락 바깥으로 휙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헤고~ 앵두 썽할 날이 읎어가 승질났을낀데
죄송하게 됐십니다~ 아~ 이리와라 어스가자~"

"하~ 동네 인심 야박하네~ 앵두하나 못노나먹나~
담장밖의 앵두도 아까빈가 보제~"

못내 성이 난 길순네는 들으란 듯이 궁시렁데며
자리를 떴다.

분을 못 이긴 한진아비는 담장 옆에 서서 앵두나무
가지를 한참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그러다 이내 체념한 듯 집안으로 들어가 대문 앞
창고문에 기대어 툇마루에 올려둔 장화를 내려
갈아신고선 괭이랑 삽을 어깨에 둘러멨다.
그리곤 대문을 밀고 나와 아직도 분이 삭히지
않은 듯 울그락 불그락 마구잡이로 구겨진 얼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밭으로 발길을 잡았다.

'내가 앵두를 하루 죙일 지킬 긋도 아이고,
안뵈는게 신간 편하지, 하! 이 썩을노무 집구석!! '

그가 동네 어귀를 막 지나칠 때 쯤
학교를 막 마치고 들어서는 앳된 소녀들 무리가
한진아비를 스쳐지나간다.

"안녕하세요~ "

소녀들이 한데 고개를 숙이며 건넨 인사를
그는 듣지 못한냥 그대로 스쳐 지나쳐버린다.

뒤돌아 고개를 갸웃 거리던 소녀들이
마을로 들어서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멀찌감치 멀어지는 그의 귓구멍을 다시 후빈다.

" 한진오빠네 앵두 열렸을까나?"

"엇그저께 봉께 붉은끼가 올라온게 곧 따겠덩데?"

' 육시럴, 개나 소나 내 집 앵두나무 이야기구먼!
에미나이들이나 아새끼들이나 하나같지'
그는 못 들은 척 그저 발길을 재촉했다.

"작년에 한진오빠가 가지 째 꺽어다 줘서
묵어봤는디 마싯더라~ 길순이 니는 묵어봤나~"

"내는 엄마가 몇번 따와서 묵어봤지~
작년에 그게 그리 맛나다고 엄마가
장에가서 안사왔나~묵잘 것도 읎더라~
비싸기만 비싸지~"

"나무가 있는 한진오빠는 을매나 좋을까?
우리 집에도 앵두나무 하나있음 좋겠다야~"

" 느~ 엄마테 사달라 캐라~그기 뭐 부럽나~"

이야기를 하는 새 둘은 앵두나무 담장아래 섰다.
바닥에 잡아채듯 찢긴 나뭇잎파리며 잔가지들이
무수히 흩어진걸 보니 이미 누군가 된통
서리를 한 모양이다.
조금 전 인사도 못들은 채 휑 지나가던 아저씨의
표정이 왜그랬는지 알 것만 같았다

여전히 담장밖으로 닿을 듯 말듯 탐스렇게
앵두가 메달려있다.

"야 담장밖으로 나온거는 따 먹어도 되지않을까?"

" 야~야 아서라 아줌마랑 아저씨가 을매나
아끼시는지, 우리 오빠말이 한진오빠도 맘대로
못 따먹는 다더라 "

" 야 솔직히 나무가 저래 큰데 90프로가 집안에
있고 저 담뼈락 끝으로 삐지 나온게 10프로도 안된다
밖에 건 지나 댕기는 사람한티 줘도 안되겄나?

"느네집 앵두라도 니 그리 말할 수 있나?"

" 와~ 내가 그리 욕심많아 보이나~ 가스나야
우리 엄마는 감나무 맨 위에 껀 안딴다
까치밥이라꼬~ 새에게도 노나주는데
동네사람에게 그리 야박할게 있겠나~"

" 치 모르는 소리하지마라~ 그거 장대가 짧아
따기 궁상스러브니 으른들이 허는 소리다~"

"그른~가~??
가만보믄 정선이 니는 아는 것도 많다~
내는 엄마가 기리 말하니 그칸줄만 알았지..
장대가 거기꺼정 못 닿을껀 생각또 몬 했따."

소녀들은 한참 앵두를 올려다보며 대화를 하다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치 소녀들이 사라지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몇분 전에 서리하던 남자아이 셋이 장대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키가 가장 큰 은철이가 여전히 장대를 들고 가지를
낚아채려 애를 썼다.

장대끝을 갈라 나뭇가지를 넣어두어 벌어진 틈새로
앵두가지를 꽂기만 하면 되는데
장대가 너무 크고 무거워 제대로 몸을 가눌수가 없다

이번엔 진석이가 장대 균형을 잡을수 있게 장대
손잡이 끝을 같이 잡아주었다.
천천히 힘을모아 열매가 주렁주렁 메달린 가지
중턱에 장대 꽂는 것을 성공했다.

"야 잡았다 잡았어~ 대진아 니도 싸게 잡아,
같이 씨게 돌리야 뗄수 있응께"
은철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진이도 같이
장대를 움켜쥐곤 다같이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끼~~끽'
'후두두둑'
'띡탁'

너무 힘을줘서 세차게 돌린 탓에
장대에서 가지가 빠진 채 나뭇가지들을 훝고
장대는 담장위에 툭 떨어져 걸쳐지고
장대 무게에 못 이긴 앵두 열매 몇 알이
마당 안쪽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그때

'삐~그덕 탈칵'

아이들은 소리나는 쪽을 힐끗 쳐다봤다.
빈집인지 알았던 집안 방문이 열리는 소리다.
담장에 걸쳐진 장대를 거둬야 하는데 들킬까
숨을 죽이며 셋은 담장 밑에 조용히 쪼그리고 앉았다.

치매걸린 할머니가 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본적이 없는 사내아이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온몸이 긴장되고 머리카락이 쭈뼛거리는 듯한 감각에
서로를 바라본 채 쭈구려 앉아있었다.

"너네 뭐하는거가?"

그때 저 멀리에서 한진이가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
아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부스스 담장을 타고 몸을 일으켰다.

"아..형..."

은철이가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대진이와 진석은 후다닥 도망을 쳤다.

미쳐 따라가지 못한 은철이는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있어야 했다.

"너 앵두먹고 싶어 서리할라캤나~?"

말 없이 은철이는 죄인마냥 고개를 끄덕였다.

" 먹고싶으면 형한티 말을허지 뭐더러 서리를해서
혼나고 그러나? 잠깐 기다려봐!"

한진이는 가방을 벗어던지고 담장에 걸쳐진 장대를 들고
가장 위에 탐스럽게 앵두가 주렁주렁 메달린 가지하나를
장대끝에 요령있게 걸고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어
가지를 꺽은 후 장대를 내렸다.

장대 끝에 팔뚝 만한 앵두나무 가지,
그리고 주렁주렁 메달린 앵두를 보고는
은철이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

"아까 대진이랑 진석이지? 같아가서 노나먹어"

가지를 장대에서 쓱~빼어 은철이 손에 쥐어주었다.

"와 쓰리하노? 훔치먹어서 뭐가 좋노?
니그들이 어설프게 꺽어서 이나무 저나무 썽하지가
않으니 울 아부지가 화내는거시여~ 혼날 짓을 왜하누?"

은철이는 머쓱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주렁주렁 메달린 앵두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리며 골목끝으로 달려나갔다.
빼꼼히 골목 어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대진이와 진석이도 앵두가지를 보며 입꼬리가 환하게 올라갔다.

"야! 장대 가지가레이~ 니 엄니 빨래 디러버진다
썽내시겄다~"

그 말에 대진이가 헐레벌떡 뛰어와 빙그레 웃으며
담장에 걸쳐진 장대를 챙겨 본인 키보다 몇자는
큰 장대를 가뿐이 이고 신이 난듯 뛰어 사라졌다.

한진이는 벗어던진 가방을 챙기고
담장아래 어지럽혀진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챙겨
집으로 들어섰다.

"할매 왜 나와있노? "

할머니는 툇마루에 다리하나는 내리고, 한쪽다리를
무릎을 세운 채 걸터앉아 앵두나무를 올려다 보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봄이 왔는가베~ 앵두가 참 곱다. 병훈아~"

'하고 우리 할매 또 내가 아들인지 안갑다'

"할매 앵두 자시고 싶나~ 내 따다주까?"

"나무가 위험 할낀데 괘안켔나?"

"나 이제 중학생아이가~ 거뜬하다, 조금만 기다리라 할매"

툇마루에 가방을 올려두고,
주운 나뭇가지들을 텃밭에 던지고는
교복을 입은 채 앵두걸터 위로 성큼성큼 올라가
순식간에 담장높이 까지 올라섰다.
굵은 가지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교복외투를 벗어
앵두를 따서 담기 시작했다.

앵두를 딸 때는 열매만 따면 쉽게 상해버려서
꼬다리까지 똑 따내야 오래 보관하고
나무도 상하지않는다.
순식간에 교복외투에 수북히 앵두가 담겼다
초록꼬다리에 메달린 앵두가 수북히 쌓인 모양 그 자체로
또 예뻤다.

한진이는 교복을 오므려 손으로 움켜쥐고는 다시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

툇마루에 다리를 걸치고 앉았던 할머니는
한진이가 마루에 내려놓은 교복 외투를 살포시 열었다.

"하구메니나 예쁘장도 하다~ 병훈아 이거 우리만 먹기
아깝다. 저그 준한이 각시가 임신해가 앵두가 머꼬시플낀데 좀 가쟈다 주고온나~"

'준한이가... 정선이 아부진가??
하~고 우리할매는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살고계신다냐~'

" 할매 앞집 갖다줄까?"

할머니는 고운 앵두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진이는 부엌으로가서 초록색 작은 소쿠리 하나를 들고와서 앵두를 한움큼 집어 담았다.

일어서려 하자 할머니는 급히 한진이 팔목을 잡았다.

"아가 가는 질에 뒷집도 가지가라 그 집도 얼라가 들어섰다는거 같든디, 

그 각시가 승질은 고약해도 지 신랑에게는 그리 잘한다드라~ 또 준한네만 줬다고 썽깔 부릴까 무십다"

'정선이랑 동갑이면 길순이네 말하는 거겠지?'

한진이는 다시 부엌으로가 양푼하나를 들고와서
다시 앵두를 한움큼 집어들었다.

"할매 나 싸게 뎅기올텐께 으디 가지말고 앵두 자시고 계시소~ 알긋제?"

한진이는 양푼위에 초록 소쿠리를 올린 채 대문을열고
나가 바로 앞집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 아지매~ 계십니꺼~"

" 누구노? 아 ~ 한진이가? 어쩐일이가? 이제 학교뎅기 왔는가보네?"

"할매가 앵두 좀 가져다 드리라 해서 가지왔임더"

몇분전 한진아비랑 한바탕 앵두씨름을 한터인데
이게 무슨일인가 싶으면서도
정선네는 초록 소쿠리에 들은 앵두를 받아들었다.

" 야~ 니네 할매 기억이 온전치 몬할낀데~
니 애비와서 또 애먼 너만 혼나는거 아이가? "

"아닙니더~ 아부지도 앵두 잘 열리문 이웃들하고
노나묵어야지 입버릇처름 말씀하셨씸더~
걱정말고 자시소~"

앵두소리에 빼꼼히 고개를 내민 정선이가
한진이와 눈이 마추지고는 볼이 발그레해졌다.
한진이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정선이 니도 묵어봐라, 해가 갈시록 달아지는거 같다~
아지매여 지 그람 가볼께여
할매 혼자 계시가 언넝 가봐야합니더
소쿠리는 난중에 정선이 핀에 보내주이소"

그리고는 발걸음을 재촉해 골목을 지나 뒷집으로 들어섰다.

"계십니꺼~"

"뉘겨? 아 한진이 아니가?
우짠... 허매 앵두가지왔나~?
니 아부지 그리 눈을 흘겨 쌓더니만 미안은 했던가부제?"

".........."

길순네는 한진이가 내밀기도 전에 양푼을 낚아채듯 집어들고는 

부엌으로 총총총 들어서더니 이내 양푼에 풋익은 자두를 수북히 담아 들고 나왔다.

" 으젯 장에서 샀다
아직 철이 아니가 비싸기만 오살나게 비싸드라
그래도 아까 내가 한기도 있고
앵두도 받았씽께 고맙게 잘묵겠다 전혀라"

"네~ 가보겠습니더, 안녕히계시소"

한진이는 양푼에 자두를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한진이가 나가기 전 그대로 앵두를 먹고 있었다.

한진이는 길순네가 준 자두가 담긴 양푼을 마루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기도 앵두하나 꼬다리를 집어들고 입에 앵두를 넣고 '톡' 하고 꼬다리를 떼내었다.

해가 뉘엿뉘엿 뒷산너머로 스러져간다.
붉은노을이 져가는 하늘과
붉은 앵두가 그림처럼 살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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